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니체


이 포스트는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스토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실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게임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33 원정대를 꼽을 것이다. 출시 직전까지도 그다지 거론되지 않았던 이 게임은 출시 되자마자 스토리텔링, 게임플레이, 아트워크, BGM등 대부분의 부분에서 대중과 평론가를 가리지 않고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에 상당히 매료됐었다. 내가 까다로워진건지, 아니면 게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건지, 혹은 갈수록 매력적인 게임의 출시가 줄어들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게임을 플레이 하기 전 최소 몇 년 간 새로운 게임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큰 기대 없이 구매한 이 게임은 플레이 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정신없이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33살 이라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토리의 흡입력과 중독적인 게임플레이에 패드를 놓기가 쉽지 않았다. 게임 중반 즈음에는 스토리의 몰입력을 해칠만한 요소도 있었으나, 최후반부에는 다시금 몰입도를 높이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단락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파리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아트워크, 스토리의 떡밥을 담고 있는 BGM등 이 게임을 칭찬하자면, 정말 밤이 새도록 떠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나는 이것을 말하고자 이 포스트를 작성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당연하게도 니체와 그의 철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다. 제목에서 니체를 언급하고, 또 본문에서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건방지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단지, 평소에도 으레 하던 AI와의 문답 중 니체와 아이디어의 유사성에 대해서 발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니체를 언급하는 것은, 그 단편적인 유사성에 대해서 내가 희열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 시대에 가장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철학자 중 한명의 철학과 내가 했던 사색이 공유하는 바가 있다니. 이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스토리 요약

비극의 시작: 화재 사고로 아들 Verso가 목숨을 잃고, 막내 딸 Alicia는 목소리와 눈, 피부를 잃는 큰 상처를 입습니다.

어머니 Aline의 선택: 슬픔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 Aline은 죽은 아들 Verso가 어릴 때 그린 그림 속 세계(Canvas)로 들어가 그곳에 가족의 그림자 버전(Painted Verso, Painted Alicia 등) 을 창조하고, 자신은 ‘The Paintress (화가)’가 되어 그 세계에 갇힙니다.

아버지 Renoir의 선택: 현실의 아버지 Renoir는 아내 Aline이 그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막고 가족을 현실로 돌리기 위해 그림 속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는 그림 속 세계에 자신의 분신(Curator)을 보내 Aline과 대립합니다.

게임의 배경: 플레이어가 탐험하는 세계는 바로 이 Verso의 그림 속 세계이며, 매년 Paintress가 모놀리스에 새기는 숫자는 그녀의 힘이 약화되어 사라질 사람들을 경고하는 의미였습니다.

⚖️ 두 가지 엔딩: 현실 수용 vs. 가상 세계 고수

게임의 최후반부에는 주인공 Maelle(현실의 Alicia가 그림 속에 들어와 기억을 잃은 상태)과 그림 속 Verso 사이에서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Verso의 엔딩 (현실 수용): 그림 속 Verso의 선택지를 골라 Maelle과 대적하게 됩니다. 이 선택지는 그림 속 세계를 파괴하고, 현실의 가족이 Verso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극복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결말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진정한 의미의 휴식(Rest)과 이동(Move On)을 선택한 것입니다.

Maelle(Alicia)의 엔딩 (가상 세계 고수): Maelle의 선택지를 골라 Verso와 대적하게 됩니다. 이 선택지는 그림 속 세계를 유지하고 모든 죽은 동료들을 되살리는 결말입니다. 그러나 이 엔딩은 소름 끼치는 해피엔딩으로 그려집니다. 되살아난 Verso는 피아노를 강제로 연주하는 인형처럼 그려지고, Maelle은 점점 현실을 부정한 어머니 Aline처럼 변해가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는 슬픔을 외면하고 가상의 안락함에 영원히 숨는 것의 대가를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게임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우리의 친구 AI에게 스토리를 요약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내 생각과는 다르게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했으나,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게임을 관통하는 주제는 ‘상실’ 이다. 요약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림 속 세계인 ‘뤼미에르’의 주민들은 매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을 경험하며, 가장 처음 플레이하게 되는 ‘구스타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연인이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게임 시작과 동시에 잃게 된다. 마엘, 루네, 베르소 등 비중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상실’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게임의 엔딩에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최후에 개발자들은 이 게임의 플레이어들에게 선택을 맡긴다. 베르소와 마엘, 두 주인공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우선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개발자들은 이 엔딩에 대해서 어느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두개의 결말이 완전히 평행하다고 결론 지은듯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어쩌면 내가 편향적인것만 봤을지도 모르지만)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베르소 엔딩을 지지하는 쪽이 우세한 듯 하다. 물론, 나는 마엘 엔딩을 좀더 선호한다. 베르소 엔딩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마엘은 성장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돌아가고,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 와 같은 이유들이었다.

다양한 의견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몰입하는 인물에 따라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 분석해 보는 것 역시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 위와 같은 이유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어쩌면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사람들에게 ‘가족을 우선시 하지 않는’ 마엘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위와 같은 이유들이 너무나 폭력적으로 들렸다.

앨리시아(마엘)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인 베르소를 보내야 했다. 심지어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외면당했고, 본인조차 심각한 화상을 입어 목소리를 잃었으며, 얼굴도 흉측해졌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림속에 빠져들었고, 남은 가족인 언니는 바쁜 상황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탐탁치 못해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림 속 세계에서 다른 인물로 다른 인생을 한번 더 살게 됐지만, 여기서도 마엘은 가족과 다름없던 구스타브를 잃고 만다. 종국에는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족과의 갈등을 또다시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껏해야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앨리시아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는 본인의 책임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미성년자에게 책임을 질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종종 우리는 어떤 잘못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책임에 대해서 배운다. 하지만, 앨리사아가 택한 행동의 결과는 본인이 온전히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멀리 왔다고 느껴진다.

베르소 엔딩을 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상 세계’인 캔버스를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부의 시각을 제외 하고 본다면, 캔버스 속 세상의 인격체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마엘은 분명한 ‘또 다른 세상’에서 다른 인생을 겪었고,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이 또 다른 인생에서 인상적인 점은, 마엘은 상실이라는 아픔을 이겨냈다는 점이다. 현실세계의 앨리시아는 상실을 이겨내지 못했지만, 캔버스 속 마엘은 구스타브를 잃고 나서도 최초의 목표인 페인트리스를 제거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갔기 때문이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